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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버튜버, 기술과 정체성 사이의 줄타기
AI는 버튜버 산업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 중 하나다. 서브컬처 영역에서 AI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점은 이미 여러논란을 통해 입증되었으며, 업계 리더들조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커버와 애니컬러는 주주총회에서AI 버튜버에 관한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AI 버튜버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버튜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엔터테인먼트의 핵심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불완전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사람들은 완벽하게 계산된 반응보다 예상치 못한 실수, 당황하는 모습, 즉흥적인 농담에 더 크게 반응한다. 버튜버가 게임에서 계속 죽으면서 좌절하는 모습, 갑자기 말을 더듬거나 웃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 팬들의 댓글에 진심으로 감동받아 우는 장면들이 클립으로 만들어지고 공유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순간들은 계산할 수 없고, 학습할 수 없으며, 재현할 수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만드는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다.
버튜버의 가치는 화려한 3D 모델이나 잘 짜인 캐릭터 설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안의 사람의 인격에서 나온다. 팬들이 버튜버를 좋아하는 이유는 캐릭터 자체가 아니라 그 캐릭터를 통해 드러나는 안의 사람의 생각, 가치관, 유머 코드, 그리고 진정성이다. 버튜버와 팬 사이의 관계는 '캐릭터 소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가깝다. 이것이 아직은 AI가 넘을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버튜버 뉴로사마(Neuro-sama)는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 뉴로사마는 AI가 직접 방송을진행하는 완전한 AI 버튜버로, 예측 불가능한 반응과 독특한 유머로 팬층을 확보했다. 그러나 뉴로사마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AI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팬들은 뉴로사마를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AI이기 때문에' 재미있어한다. 뉴로사마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답변을 내놓거나, 갑자기 이상한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메타적인 재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AI의 완성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AI의 불완전함과 이질감을 즐기는 것이다.
현재 AI는 패턴을 학습하고 통계적으로 가장 적절한 반응을 생성할 수는 있지만, 진짜 '맥락'과 '감정'을 이해한다고보기는 어렵다. 팬이 힘든 이야기를 했을 때 위로의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공감인지 알고리즘이 생성한 문장인지는 팬들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만약 AI가 진정으로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팬들은 오히려 더 큰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기계인데도 나를 이해한다'는 신선함이 새로운 형태의 감정적 연결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 가설의 영역이지만, AI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AI 엔터테인먼트의 또 다른 흐름은 AI 캐릭터 챗이다. 이는 사용자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24시간 언제든 상호작용할수 있게 하는 기술로, 이미 Character.AI 같은 플랫폼에서는 다양한 캐릭터와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초기에는 텍스트 기반 대화가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음성 대화와 영상 통화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그록(Grok)이 선보인 애니메이션 캐릭터 '애니'는 버튜버는 아니지만 유사한 비주얼과 상호작용 방식으로 AI캐릭터 엔터테인먼트의 한 형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버튜버 IP를 활용한 AI 챗봇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으며, 스콘의 푸딩 AI나 트리니들의 트위브(Twiv) 같은 서비스는텍스트뿐만 아니라 실시간 영상 대화를 통해 감정 반응과 대화의 흐름에 따라 관계가 진화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등점점 더 몰입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AI 캐릭터 챗 서비스는 팬 경험을 확장하는 새로운 수익 모델로 기능할 수 있다. 캐릭터의 성격, 말투, 스타일을 학습한 AI는 팬들에게 '언제든 접근 가능한 나만의 캐릭터'라는 경험을 제공한다. 버튜버 IP의 경우, 이것이 실제버튜버를 대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팬들은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깊은 애착을 형성하고, 실제 방송에서 더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수 있다. 게임, 웹툰, 웹소설과 함께 AI 챗봇은 버튜버 IP를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고 팬들과의 접점을 늘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AI 챗봇이 실제 버튜버의 이미지를 훼손하거나 부적절한 대화를 생성할 경우 브랜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또한 과도한 의존은 실제 버튜버와의 관계를 희석시킬 위험도 있다. 중요한 것은이러한 AI 챗봇이 투명하게 'AI'라고 표시되고, 실제 버튜버의 활동을 보완하는 형태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이다.AI 엔터테인먼트가 성공하려면 기술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윤리적 경계와 투명성이 함께 확보되어야 한다.
AI는 창작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AI 음악 생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버튜버들이 AI를 활용해작곡하거나 커버곡을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미 AI 보컬 합성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일부 버튜버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학습시킨 AI 보컬로 다양한 곡을 부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는 버튜버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콘텐츠를 가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그룹 버튜버가 AI를 활용해 멤버 수를늘린 듯한 효과를 내거나, 솔로 버튜버가 AI와 협업해 다양한 음색의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AI를 '대체재'가 아닌 '창작 도구'로 활용하는 긍정적인 사례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완전히 AI가 생성한 음악이나 콘텐츠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다. 뉴로사마처럼'AI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AI 아티스트가 등장해 독자적인 팬층을 형성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인간아티스트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카테고리로서 공존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버튜버 자체를 AI가 대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반면, AI가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버튜버를 둘러싼 '제작 과정'과 '크리에이터 생태계'다. AI 이미지 생성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AI 음악 생성은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역할을 줄이고 있다.
서브컬처 커뮤니티에서 AI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버튜버 산업은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캐릭터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리거, 3D 모델러, 모션 디자이너, 배경 아티스트, 음악 프로듀서, 믹싱 엔지니어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버튜버 한 명을 만들어내고 지원한다. 만약 AI가 이들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한다면, 산업의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신인 크리에이터들이 경력을 쌓고 성장할 기회가 사라지면,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체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감소할 위험이 있다. 이것이 커버와 애니컬러가 AI 버튜버를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진짜 이유일 수 있다. 기술적으로가능하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도입했다가는, 자신들의 산업을 지탱하는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튜버 산업이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판단의 문제다.
그렇다면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홀로라이브의 하쿠이 코요리는 흥미로운 접근을 보여줬다. 2023년ChatGPT가 유행하자 코요리는 이를 활용해 트윗을 작성하거나 AI가 시킨 대로 하는 방송을 진행하는 등 AI를 방송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 더 나아가서는 최근 자신의 분신인 'AI 코요리'를 만들었다. ChatGPT에 코요리의 개인정보, 성격 등을 입력해 코요리의 입장에서 답변하도록 학습시킨 뒤, 코요리의 음성으로 만든 TTS를 덧씌운 것이다.
코요리는 꾸준히 AI 코요리와 대화하는 방송을 진행했고, 2024년 생일 라이브에서는 AI 코요리를 보컬로이드화시켜 듀엣 곡을 부르기도 했다.
코요리의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AI를 '자신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방송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했다는 것이다.AI 코요리는 코요리가 방송하지 않을 때 대신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코요리 본인이 방송에서 AI 버전의 자신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는 메타적인 재미를 제공하면서도 본질은 여전히 '코요리 본인의 방송'이라는 점을 유지했다.
팬들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투명성이다. 코요리는 AI를 사용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혔고,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공개했다. 둘째, 주도권이다. AI를 만들고 사용하는 주체가 코요리 본인이었으며, 회사나 외부에서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셋째, 본질 훼손이 없었다. AI가 코요리를 대체하거나 코요리의 정체성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코요리라는 캐릭터를 더 재미있게 표현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결국 AI와 버튜버의 관계는 '대체' vs '공존'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떻게 윤리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AI는버튜버의 본질인 인간성과 진정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고, 반대로 그것을 훼손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버튜버 산업이 AI를 받아들이되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보호하고, 기술의 편의성을 누리되 인간적 가치를 지키는균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업계 리더들이 AI 버튜버를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균형이 아직 명확히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기준은 아직 형성 중이다.
버튜버 산업이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려면, AI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신중하고투명하며 윤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AI와 버튜버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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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DUCK
버추얼 크리에이터와 서브컬처 산업을 분석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버튜버, AI 캐릭터, 스트리밍, XR 시장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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